디지털 사적 제재, 이대로 좋은가
1. 사적 제재란
“가해자를 경찰이 처벌하지 못하면 저희가 처벌해야죠”. 누리꾼들이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제작.유포자’의 신상 정보를 공유하며 남긴 말이다. 지난 6월엔 ‘경남 밀양 중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 관련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는 유튜브 채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급기야는 범죄 혐의자의 신상정보를 제공하는 웹 사이트 ‘디지털교도소’까지 등장했다.
최근 국민적 공분이 커진 사건에 대한 ‘사적 제재’가 기승을 부린다. 사적 제재는 공적 제재의 반대 개념이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사적 제재를 “개인이 폭행, 감금, 살해 등의 형벌을 내리는 ‘사적 형벌’, 집단 내 공식 절차를 내리지 않거나 위반해서 소속원에게 유.무형의 불이익을 주는 경우, 온라인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신상 공개’1 ”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정리하자면 사적 제재란 사법 시스템을 통해서가 아닌 개인이 제재하는 행위 전반을 의미한다.
2. 사적 제재, 정의 구현이냐 마녀 사냥이냐
사적 제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미완의 정의를 완성한다고 본다. 예컨대 밀양 성폭행 사건은 직·간접 가담자까지 포함하면 가해자가 100명이 넘는다고 알려졌지만 부실한 수사 등으로 2004년 당시 단 한 명도 형사처분을 받지 않았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공적 제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타인의 삶을 파괴한 자들이 그에 대한 대가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최근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일부가 근무하던 직장에서 해고됐다. 그들을 고용한 가게에 별점 테러가 이어지고,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 조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적 제재’를 명분으로 삼은 유튜버들에 의해 신상이 공개된 여파다. 누리꾼들은 신상 공개를 통해 이들을 사회적으로 배척할 수 있었고, 따라서 지연된 정의를 실현했다고 주장한다.
부실한 법 체제를 보충한다는 관점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딥페이크 음란물’의 경우 텔레그램 특징상 제작·유포자를 추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허위 영상물 제작·유포 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2에 근거해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해 유포할 경우에 한 해 처벌할 뿐이다. 이마저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친다. 이들은 사적 응징을 통해 법의 회색 지대를 채워 권선징악을 완성할 수 있다고 옹호한다.
실제로 2023년 10월 SK커뮤니케이션즈가 성인남녀 7,745명을 대상으로 ‘범죄 가해자의 신상 공개 및 저격 등 사적 제재’ 관련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응답자 중 49%(3,856명)가 적절하다는 지지 의견을 표했다. 전체 응답자 중 44%(3,480명) 역시 ‘강력 범죄에 한해서 인정한다’며 선택적 지지 의견을 전했고, ‘사법 체계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사적 제재는 부적절’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4%(335명)에 그쳤다.2
반면 절차 없이 개인이 나서다 보니 마녀사냥으로 변질된다는 반박도 있다. 무고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되면 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온라인 특성상 지목된 무고한 사람은 치명적 피해를 당한다. 2020년 디지털 교도소 1기 사이트를 통해 신상이 공개됐던 한 대학생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성착취범이란 누명을 썼던 또 다른 대학교수는 “지옥문이 열린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사이버 공간이 무서운 게 어디까지 전파가 됐는지 모르지 않나. 어쩌다 만나는 다른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걱정되고 불안했고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으니 울분에 차서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3
3. 사적 제재, 엄연한 범법 행위
정의 구현이냐 혹은 마녀 사냥이냐 하는 논쟁을 떠나 분명한 것은 사적 제재가 엄연히 불법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정보 주체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 또는 공유해서는 안 된다. 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은 사실이든 거짓이든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 어떤 정의를 실현하든 과정 자체가 불법이라면, 그 정의는 결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심지어 누구를 위한 정의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이 폭로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원치 않는 정보들이 공개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또 피해 유족들이 2차 가해를 우려해 비공개 결정한 피의자의 정보가 디지털교도소에 공개 박제되는 사례도 있었다. 한편 정보를 공개한 유튜버 등은 높은 사회적 관심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했다. 범죄 피해 당사자가 배제된, 심지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응징이 과연 정의일까.
사적 제재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시선을 ‘처벌’에 집중시킴으로써 건설적인 논의를 방해한다. 사실 가해자에게 부과되는 처벌이란 항상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피해자의 고통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이 필요한 이유는, ‘부족하게나마’ 피해자의 회복을 돕고 해당 행위에 대한 집단적 억제를 대대적으로 보임으로써 재발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적 제재는 개인에 대한 응징만을 강조한다.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소모적인 과정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사회 구조적 원인을 분석해 예방하는 일은 뒷전이 되고 사회 진전을 저해한다.
4. 사적 제재, 어떻게 막을까
2020년 폐쇄됐던 디지털교도소는 4년 뒤 ‘2기’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부활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사이트를 다시 만든 이유에 대해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범죄자가 많아 신상 정보 공개로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 밝혔다.4 실제로 한국법제연구원이 전국 성인 남녀 3,400명을 대상으로 발표한 ‘2023년 국민법의식 실태조사’5 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법이 ‘정의롭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58.4%에 불과했다.
결국 사적 제재의 성행은 사법 불신에 따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경찰, 검찰, 법원이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고 적합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민이 공적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신종 강력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입법 속도를 높이면서 법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한다.
수사, 입법, 재판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가 보장될 필요도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2007년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도입했으나 점차 활성화되기는커녕 최근 7년간 실시율이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6 심지어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리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이에 반해 국민의 정의 구현에 대한 열망과 사법 참여에의 의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갈증을 공적 테두리 안에서 해소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사회의 질서와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찬호. (2024). 표지 이야기 “한국 사법절차 공정했다면 사적 제재 나왔겠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인터뷰. 주간경향,(1584), 14-16. [본문으로]
- 시민일보(2023.10.31.). 가해자 신상 공개 및 저녁…‘사적제재’ 논란 묻는 설문조사 결과 49% ‘적절하다’. https://www.siminilbo.co.kr/news/newsview.php?ncode=1160289661680399 [본문으로]
- YTN(2020.). 디지털 교도소 피해입은 채정호 교수 “욕 쏟아져 정신 차릴 수 없었다”. https://www.ytn.co.kr/_ln/0103_202009090921352490 [본문으로]
- 한국일보(2024.5.8.). [단독]범죄자 신상공개 ‘디지털교도소’ 부활…새 운영자 “검증 철저히 할 것”.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0709050000728?did=NA [본문으로]
- 한국법제연구원(2023). 『2023년 국민법의식 실태조사』. [본문으로]
- 법원행정처(2023). 『2008~2022년 국민참여재판 성과분석』.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