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

문화시평(30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근래 여러 군데에서 사용되고 있다. 지난 2017. 5.에 앞당겨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주요 후보자들 모두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나름의 공약을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약대로 2017. 9.경 대통령직속기구인 ‘4차 산업혁명위원회’1가 설치되었다. 정부 기관과 그 산하 단체들이 발주하는 용역 과제의 주제 가운데 그 어딘가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약간의 과장을 하면, 나라 전체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물결에 휘말려 들어가 있어, 곧 다가올 새로운 산업혁명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한편, ‘4차 산업혁명’에 관하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현상을 “실체 모호한 유령”이라고 일축하는 비판론도 있다. 이러한 비판론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론은 사회 속의 과학기술 전반이 아니라 특정 정보통신 기술에 주목하게 하며, 기술이 발전하면 산업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식의 발전관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사회를 합리적으로 변하게 하려는 노력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정보통신기술과 과학기술의 역할을 설정하여야 하며, 단순하고 조급한 추격형(catch-up) 정책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기초과학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견해는 테렌티우스(Publius Terentius Afer)의 격언3처럼 사람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나타나는 근원적 이유는 과학기술이 사회・정치・경제・문화적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믿음과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감의 극복과 근원적 통찰을 단 한권의 책으로부터 모두 얻을 수는 없겠지만, 토머스 J. 미사(Thomas J. Misa)의 『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를 통하여 적어도 그 단서를 얻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원제의 부제(Technology and Culture From the Renaissance to the Present)와 같이,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재(2010년)까지의 기술과 문화의 역사와 상호 연관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르네상스 시대부터 연대별로 기술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기술이 나아갈 다양한 범위와 방향의 연구에 필요한 견고한 경험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저자는 기존의 산업혁명에 대한 도식적이고 피상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논거와 다층적인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그 본원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제1차 산업혁명에 대한 미사의 설명은 기존의 일반적인 설명과 구별된다. 저자는 18~19세기에 나타난 산업혁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증기기관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국은 통념과 달리 증기기관이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물(水), 동물, 인간의 힘이 영국 제조업의 가치 향상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상황을 그 논거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영국 이외의 국가들도 자국의 사정에 따라 산업혁명으로 가기 위한 나름의 루트를 선택하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여 왔으므로, 제1차 산업혁명을 영국의 증기기관 기술과 이를 적용한 방적과 직물산업의 발전으로 한정하여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 경제, 문화 등에 영향을 주었지만 반대 방향으로도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새롭게 느껴지게 한다. 과학기술 자체가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변화의 ‘동력’이자 그것의 ‘산물’이라는 저자의 관점에 서서 다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둘러봤다. 이내, “몇 가지 분야의 과학기술 확보를 통해 패권(hegemony)을 선취하고, ‘경제성장과 사회문제해결을 함께 추구하는 포용적 성장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며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4”는 생각을 이 책의 저자인 미사가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나타났다.

  1.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28250호, 시행 2017. 8. 22. [본문으로]
  2. 홍성욱 기획, 김소영, 김우재, 김태호, 남궁석, 홍기빈 홍성욱 지음(2017),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Humanist. [본문으로]
  3. Quot homines, tot sententiae(사람 수만큼 생각도 다르다)(에라스무스 저, 김남우 옮김(2014), 『격언집(Adagia)』, 부북스, 70면). [본문으로]
  4.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1조 참조. [본문으로]
저자 : 김훈건

KISO저널 편집위원, SK커뮤니케이션즈 법무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