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돼야 할까.. ‘3종세트’를 둘러싼 법개정 논쟁

문재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선 후보가 4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모리스 역삼 대연회장에서 열린 미래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초청 포럼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인터넷 정책은 달라져 왔다. 인터넷실명제(제한적본인확인제)가 도입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이지만, 실명제 대상 사이트가 확대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였다.

이후 박근혜 정부때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 확대를 공약으로 걸었지만, 눈에 띄는 조치는 없었다. 다만, 국민이 공직자나 정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했다는 이유로 민·형사 소송을 당한 경우가 22건(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4건 포함 형사소송 18건)이나 있었다.

 

표_정부 인터넷 포털정책 변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정책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인터넷 포털의 ‘임시조치’ 제도 개선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정보통신망법 개정안)’들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인터넷을 포함한 방송통신 정책에서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 확대를 최대 과제로 삼은 만큼 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8월 1일 취임식에서 “인터넷 게시물 차단조치에 대한 제도개선을 통해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자는 논의는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 확대라는 범주를 넘어 언론 자유 확대, 민주주의 진전 등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임시조치 제도나 명예훼손죄에 대한 규제 완화가 인터넷상의 허위·비방 정보 유통을 증가시키고 이로인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인격권 침해를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 역시 여전하다.

 

임시조치 개선 어떻게 해야 할까

 

네이버, 다음 같은 인터넷포털들은 ‘임시조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시조치 제도란 사생활이나 명예훼손 논란이 있는 인터넷 댓글이나 블로그 등의 게시글에 대해 네이버나 카카오 등 인터넷포털들이 이를 삭제처리하거나 블라인드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누구든지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권리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무조건 해당 정보가 30일 동안 차단(블라인드)되도록 하고 있어 인터넷 게시 정보에 대한 사실상의 사전검열이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4대 인터넷 포털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차단한 인터넷 게시물의 건수는 82만여 건에 이르며, 2008년 대비 2012년의 인터넷 게시물 차단 건수는 300% 가깝게 폭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 정보 게시자와 차단 요청자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을 해소하고 이용자의 정보 접근권을 높이자는 논의는 지난해부터 진행됐다.

임시조치 제도를 바꾸자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두 개나 발의돼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가 발의한 법안과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정부 법안은 ▲임시조치에 대해 정보게재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하고▲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온라인명예훼손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포털)의 임시조치에 대해 이의제기가 있는 경우에는 온라인명예훼손분쟁조정위원회가 직권조정을 하도록 했다.

유승희 의원안 역시 ▲임시조치에 대해 이의제기할 수 있게 했고, 이 때 자신이 게재한 정보가 정당한 권리행사인 것임을 소명할 경우 포털은 30일 이내에 차단 조치된 정보에 대한 해제조치를 할 수 있게 했다.

또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포털)는 차단 등의 조치에 대해 매년 2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에 보고토록 했고 ▲방통위는 보고받은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게 했다.

또한 ▲포털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함이 명백한 인터넷 게시 정보에 대해선 임의로 해당 정보를 차단하거나 차단해제 요청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함이 명백한 정보에 대해선 차단 요청을 거부할 수 있게 했다.

두 법안 모두 부족했던 정보 게재자의 표현의 자유를 크게 늘린 법안이나, 해법은 다소 차이가 난다.

정부 법안은 방송통신심의위에 온라인명예훼손분쟁조정위를 설치해 갈등조정이라는 준사법적인 기능을 부여하려 하는 반면, 유승희 의원 법안은 그런 언급 없이 포털이 차단한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투명성에 초점을 뒀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공약으로 ‘사이버분쟁조정기구’설립을 공약화한 만큼, 국회 논의 시 이 부분이 추가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정보게재자의 표현의 자유와 방어권 보장을 위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게시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즉시 임시조치를 중단하고, 현행 명예훼손분쟁조정기구를 개편한 ‘사이버분쟁조정기구’의 심의·결정 및 법원의 최종 판단 때까지 게시를 허용한다는 걸 공약화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포털이 임시조치할 경우 법적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는 조항을 넣은 것에 비해 정보 게재자에게 유리한 조항이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포털 등의 임시조치 남발에 따른 표현의 자유 위축 문제는 해결했지만, 자칫 인터넷상의 가짜뉴스나 명예훼손 글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명예훼손 위법성 조각사유 확대, 인터넷실명제 잔재 완전 폐지 추진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함께 쌍둥이 법안처럼 추진되는 게 바로 ‘형법 개정안’이다.

민주당 표현의자유위원회 위원장인 유승희 의원은 명예훼손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제기가 가능하게 하고, 징역형을 폐지하면서 벌금형으로만 처벌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을 함께 발의했다.

전체 형사 사건이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도 명예훼손 관련 고소 증가율이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고려한 것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의 행적을 제기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사례, 부산에서 비선실세 의혹 등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돌렸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례, 상습적으로 대통령 비방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혐의로 징역 10월을 받은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인터넷 글 등에 대한 명예훼손죄 남용을 막기 위해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 대폭 확대하겠다면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규제는 민간 자율기구에 의한 자율규제와 사법적인 절차를 통해 진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아울러 네티즌의 게시글에 대한 자기검열 등으로 위축효과를 주어 인터넷상의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데 쓰였던 정보통신망법상의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지만, 아직도 잔존하고 하는 개별법(공직선거법, 게임산업법 등)상의 인터넷실명제를 폐지해 자유로운 인터넷상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늘어나는 표현의 자유, 자율규제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

 

인터넷실명제(제한적본인확인제)란 인터넷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확인되어야만 인터넷 게시판 등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제도다. 위헌 판결이 나와 폐지됐지만 공직선거법이나 게임산업법 등에서는 유지되고 있다.

실명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지나친 비난이나 욕설, 인신공격이 포털 댓글에서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개별법령에 잔존하는 실명제를 완전히 폐지하고▲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임시조치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대폭완화하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 증진법 3종 세트가 한꺼번에 진행되면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제기된다.

바람직한 인터넷 예절에 대한 교육과 선플달기 운동 외에 제도적인 대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인터넷에 대한 내용 규제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와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통해 하고 있다.

KISO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개별 기업 단위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사회적 책무, 사회적 요구, 사회적 위험의 방어를 위해 설립된 자율규제기구다. 인터넷 게시물 관리의 규칙과 질서 정립을 목적으로 2009년 출범했다.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저널리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건전한 인터넷 생태계 육성 발전을 위해 설립된 기구다. 뉴스 제휴 및 제재 심사를 목적으로 2015년 출범했다.

즉 KISO는 불법 의심 게시물 심의 업무를, 뉴스제휴평가위는 뉴스 제휴 심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에 대해 상당 부분 법적 규제 대신 자율규제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인터넷의 혁신성때문에 오프라인의 법체계를 그대로 적용하는 건 한계적이고, 우리나라만 법적 규제 중심으로 운영할 경우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국내 기업이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법적 규제는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을 담지 못해 되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자율규제를 도입한 이유다.

하지만, 다소 부족했던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 가짜뉴스나 명예훼손 글 확대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자율규제 시스템에 대한 중간 평가와 함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자율규제 역시 규제의 부재가 아니라 규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 스스로 규제를 이끌어 가는 것인 만큼, 미래 지향적인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를 향한 자율규제와 법적 규제의 역할분담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배진아 공주대 영상학과 교수는 6월 29일 열린 ‘4차 산업혁명과 새 정부의 역할’을 주제로 한 9개 ICT·미디어 학계 연합 특별 세미나에 참석해 “자율규제라는 말은 ‘(피규제자인)기업 스스로 규제한다’거나, ‘비규제·탈규제’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공동 규제시스템을 의미한다”며 “KISO가 공동 자율규제기구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사후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의 포털 자율규제는 법적·행정적 규제를 피하려고 자율규제기구를 설립하는데 머물렀지만, 앞으로는 규제기구와 협력해 공동 규제하는 모델로 가야 한다. 이는 큰 틀의 공적 책무를 정한 뒤 자율규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인터넷 내용 규제에 대해 법으로 강제해선 안 되지만, 자율규제기구(KISO)의 활동이 더 적극적이고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 : 김현아

이데일리 편집국 산업부 김현아 IT과학팀장/ *E-mail. chaos@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