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인터넷을 어디까지 규율해야 할까…자율규제시스템에 거는 기대

-이용자가 바라본 인터넷자율규제

인터넷이 삶 속에 파고들면서 기업의 비즈니스 영역을 넘어 공공성 확보가 화두가 되고 있다. 인터넷은 기업의 순수한 비즈니스 영역에 머문다기보다 세상과 만나는 관문국 역할을 한다. 여론이 생겨나고 사회 질서가 유지되며 사생활 보호나 개인정보 보호 수준도 달라진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인터넷은 뜨거운 감자다. 인터넷은 우리 사회에 참여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지만, 국정원 댓글 조작이나 드루킹 사태에서 드러났듯 여론을 좌우하려는 시도도 적지 않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자녀가 불법 성인물이나 불법 도박 정보, 욕설 같은 반사회적 정보에 쉽게 노출될까 걱정하고, 조사 중인 사건인데 실명이나 주소가 공개돼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을까 염려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공들여 만든 콘텐츠로 막 돈을 벌려는 데 인터넷에 공짜 콘텐츠가 풀린다든지, 2004년 ‘쓰레기 만두’ 오보 사건처럼 경찰 조사를 받던 중소기업 대표가 인터넷으로 오보가 확산돼 자살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쓰레기 만두 사건의 1차 책임은 사실 확인 없이 왜곡 보도를 한 언론이나, 지금까지도 포털이 검색어 제외 기준을 정할 때 언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우려는 여전하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인터넷에도 ‘규제는 필요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 어떤 방식으로 규제하는 게 좋을까.

인터넷 규제해야 한다자율? 타율?

국내 네티즌들에게 물었더니 ‘기업이나 제3의 기관을 통한 자율규제’를 응답자의 51.2%(포털사업자 자기책임관리 37.7%, 제3의 자율단체나 기관을 통해 관리 13.5%)가 지지했다. 하지만, ‘정부의 행정규제 강화를 통해 관리’(20.9%)나 ‘국회의 입법규제 강화를 통한 관리’(14.4%)를 택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원회(위원장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양재 변호사)가 2018년 10월 23일~26일까지 19세 이상 60세 미만 전국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주)마크로밀 엠브레인을 통해 조사한 결과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자율규제는 못 믿겠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아프리카TV가 1인 1일 별풍선 충전 한도를 100만 원으로 자율규제했는데 조블페이 상품권으로 편법 우회되도록 하고 있다”며 호되게 질타했다.

서수길 아프리카TV 대표는 “아프리카TV는 자율규제를 선도해서 별풍선 충전 한도를 100만 원으로 두고 있는데, (조블페이가) 저희 회사도 자회사도 아니어서 완벽히 통제하긴 쉽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의원들은 정부(방송통신위원회)가 대책 마련에 나서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자율규제가 사회 전반에서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역사가 짧은데다 운영상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인터넷 자율규제는 2009년부터

우리나라에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orea Internet Self-Governance Organization, KISO)가 만들어진 계기는 2008년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서 사실 확인이 안 된 게시물이나 인신공격성 글 등이 많아져 논란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전국이 시끄러워지면서 이명박 정부와 포털 기업들은 긴장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2008년 12월 다음, 네이버, SK커뮤니케이션즈, 야후코리아, KTH, 하나로드림, 프리챌은 ‘포털 자율규제 협의회’를 발족하게 된다.

KISO 조직구성도<출처=KISO 홈페이지>

 

이후 2009년 3월 KISO를 출범하게 되는데, KISO의 제1기 이사회 의장은 주형철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제1기 정책위원회 의장은 김창희 전 동아일보 국제부장이었다. 2010년 김상헌 네이버 대표가 이사회 의장을 맡았지만, 2013년 최세훈 다음 대표를 시작으로 이석우, 임지훈, 여민수 등 카카오(다음) 대표가 계속 의장을 맡고 있다.

KISO는 지난 10년동안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원회’, ‘부동산매물검증 · 클린관리센터’, ‘온라인광고심의위원회’, ‘온라인 청소년 보호체계 구축위원회’ 등을 두면서 인터넷의 가치(Value)를 찾는 활동을 하고 있다. 포털사업자들의 임시조치(문제 글에 대해 블라인드 조치를 하는 것) 원칙을 정했고, 네이버의 검색어 (제외) 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사후 심의하고 있다. 영국 IWF(Internet Watch Foundation)보다는 늦었지만,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이용자 보호에 노력한다.

KISO의 존재감이 빛난 적도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인터넷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2009년 6월 KISO는 사이버모욕죄 도입이 담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 굵직한 인터넷 규제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과 인터넷 업계 CEO들의 만남을 주선해 국회가 인터넷 규제 신중론으로 기우는 데 기여했다.

당시 김 의장은 “창의와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인터넷 산업이 절대 발전할 수 없다. 인터넷 관련 규제는 법률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사이버 테러와 고문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하고 필요하면 법으로 규율해야 한다”면서도 “그전에 업계가 자율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오 의장의 발언은 2000년대 초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으로 일할 때부터 쌓은 그의 철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KISO라는 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우리나라에 없었다면 공감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터넷은 불공정’ 인식 여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KISO를 중심으로 한 자율규제 시스템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용자들이 느끼는 인터넷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낮고, 인터넷을 국가가 규제해야 안심이라는 정치권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원회가 네티즌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포털사업자들이 검색어 서비스를 공정하게 운영한다’는 응답은 5점 만점에 2.66점에 그쳤다. 오히려 ‘정부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한다(3.38점)’, ‘영리적 기업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한다(3.04점)’는 응답이 높았다.

‘보수정당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한다(3.05점)’, ‘진보정당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한다(2.78점)’는 결과도 나왔는데, 설문에 응한 네티즌들의 정치성향은 진보(40.3%)가 보수(19.1%)보다 많아 정치적 유불리 평가는 의미가 없다. 같은 내용을 봐도 진보주의자의 눈에는 더 보수적으로, 보수주의자에겐 더 진보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이 인터넷 검색어 서비스를 하면서 이념 차이보다는 정부나 영리 기업에 유리하도록 불공정하게 운영한다는 답변이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보안접속(https) 차단으로 불거진 검열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불법 음란물과 불법 도박 같은 내용을 몰래 유통하던 해외 인터넷사이트를 잡겠다며 접속차단 기술을 고도화했다고 발표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감청 아니냐”, “왜 국가가 맘대로 인터넷을 차단하느냐”, “중국처럼 되는 거냐”, “야동 안 보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야동 합법 청원)” 같은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정부의 음란물 https 차단에 항의하는 시민이 광화문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필자 제공>

사실 정부가 https 차단을 위해 도입한 ‘SNI(Server Name Indication) 필드접속차단 방식’은 통신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패킷 감청이 아니다. ‘SNI’는 https에서 암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에 환경 설정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서버 이름을 식별해 기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어서 패킷 내용을 들여다보는 감청과 다르다.

또, 어떤 사이트를 차단할까 정하는 기준도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이 방식으로 접속을 차단한 인터넷 사이트는 정보통신망법(44조의7,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에 따라 불법정보로 규정된 음란물, 명예훼손, 불법도박 정보 등이다.

하지만 민심은 분노하고 있다. 인터넷 내용 심의를 맡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결정하는 ‘불법성’에 대해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운데, 더 고도화된 기술로 막는다니 완벽한 신뢰를 보내기 어려운 것이다. 불신의 뿌리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내용 심의 제도와 인터넷에 대한 과도한 국가주의 경향에 있다.

<출처=방통위 제공>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성기 노출 등 어디까지를 불법 음란물로 볼 것인지도 논란이나, 방심위는 외국인 기자가 운영하며 북한의 정보통신기술 현황을 전달하는 ‘노스코리아테크(northkoreatech)’를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로 차단했다가 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기도 했고, 웹툰 레진코믹스를 음란 사이트로 차단했다가 이용자들의 항의로 하루 만에 번복하기도 했다.

인터넷 세상의 규칙에 대해 논할 기회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월 21일 청원인이 25만 명을 넘긴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답하면서 “국민들과 소통이 부족했다”고 사과했다. 또한, “국민들 모두 불법성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꼭 필요한 조치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인터넷 시대 국가 규제의 필요성과 규제 방식, 정당성 등에 대해 사회적인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이 자율규제 강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규제에) 더 나은 방법에 대해 의견을 주시면 경청하고 논의하겠다. (https 차단논란을 계기로) 정부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할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https차단정책에 대한 반대의견. <출처=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이 위원장 말대로 ‘https차단 논란’은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세상의 규칙을 어떻게 만들어갈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찾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크다 보니, 세상을 비추는 인터넷에서 뭔가를 차단하거나 삭제하고 허용하고 푸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이념을 가진 정부가 출범해도 흔들리지 않는, 인터넷 자율규제 토양이 더 튼튼해져야 한다. 인터넷 기업이나 KISO가 인터넷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길지만 지난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자율규제 자신감 필요·커뮤니케이션 노력도 절실

인터넷 자율규제의 신뢰도를 높여가는 방법은 뭘까. 인터넷 이용자에게 더 친절하고 투명하게 자율규제의 기준과 절차를 알리고 소통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 더 많은 기업이 KISO 자율규제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가 아닌 제3의 기관(KISO)이 하는 자율규제라도 기업 입장에선 달갑지 않겠지만, 자율규제 시스템이 무너지면 정치 권력이 개입해 인터넷을 직접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2012년 ‘안철수 룸살롱’은 연관 검색어에서 보이고 ‘박근혜 룸살롱’은 안 보인다는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학계·시민단체 전문가들이 모여 KISO 안에 ‘검색어 검증위원회’를 만들었고, 매년 상·하반기 보고서를 내고 있다. 네이버 측으로부터 검색어 제외 데이터를 받아 위원회 위원들이 일일이 적정성 여부를 검토하고 의견을 낸다.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에는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양재 변호사(위원장), 이재신 중앙대 교수, 윤성옥 경기대 교수, 한양대 황성기 교수, 대구대 이승환 교수,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가 활동중이다.

지난 1월 발간된 검색어 검증위의 보고서를 보면 △네이버의 검색어 제외처리 건수가 줄었고 △제외 처리된 사유에 대한 기록이 더 구체화 됐다.

예전에도 네이버 측이 검색어를 제외할 때 사유를 적어 냈지만 이번에는 사유와 제외 일시, 해당 검색어뿐 아니라 제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해 제출했다. 해당 직원 이름과 언론사 기사 링크를 첨부하는 등 검색어 제외 정책이 투명해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가 기자들을 만나 직접 정책 방향을 설명한 것은 지난 2월 19일 기자회견이 처음이었다. 또, 2017년 하반기 심의보고서를 2019년 1월에 발간하는 등 늑장 보고서라는 비판도 나온다. 2017년 하반기 인터넷 세상을 다룬 보고서가 1년도 더 지나 공개되니 급변하는 인터넷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김기중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원회 위원장은 “아직 네이버가 의도적으로 검색어를 조작한다는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면서도 “심사보고서 발간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재신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포털의 검색어 서비스가 신뢰를 높이려면 포털이 개입한다는 점을 알리고 검색어 제외절차를 제대로 알려 기업이나 연예기획사 외에 일반인들도 제외신청을 쉽게 하게 하는 등 절차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자 : 김현아

이데일리 편집국 산업부 김현아 IT과학팀장/ *E-mail. chaos@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