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디지털 시대의 변화와 망각에 대한 문제

문득 10년 전에 찍은 자신의 사진을 접했을 때, 새삼 그 시절의 젊음에 놀라고 또한 유행이 지난 촌스러움에 세월을 실감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하게 마련이다. 사람의 기억조차 변한다고 한다. 한 때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나 덜 숙성된 발언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고 원형과는 다른 아스라한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무심코 인터넷과 SNS에 올렸던 글과 사진은 전 지구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 기억장치에 보존되어 망각의 혜택에서 벗어난다. 디지털 기억은 사진과 같이 정지되어 나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나, 이를 내가 통제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대한 망각 없이 변화한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옥스퍼드 대학교 인터넷연구소 교수인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의 저서 [잊혀질 권리]1)는 이 질문에 대한 의미있는 문제제기이자 진지한 모색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검색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망각’과 ‘기억’ 사이의 균형관계가 역전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 소위 ‘잊혀질 권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논의의 선두그룹은 ‘문제의 인식’과 ‘현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 단계를 지나 ‘변화를 위한 실천’의 단계로 들어간 듯하다. 제일 앞선 부분은 놀랍게도 법 분야이다. 법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여 제일 늦게 변화가 일어나는 분야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이미 기존 프라이버시권의 확장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잊혀질 권리의 내용을 헌법적 기본권의 하나로서 인정하고 후속 법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EU에서는 2012년 1월 잊혀질 권리의 내용을 담은 개인정보보호규정(안)이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2) 2011년 9월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정보주체의 권리로 개인정보의 삭제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질 권리는 아직도 초기 문제인식의 단계이며, 그런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잊혀질 권리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매일의 일상에서 열심히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의미를 금방 이해하고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문제는 미처 인식되지 않았음에도 우리의 생활에 가깝고 절박한 문제가 되어 있다는 뜻이겠다.

이 책 [잊혀질 권리]를 읽는 첫 번째 가치는 ‘문제의 인식이 해결책의 첫걸음’이라는 옮긴이의 말에 요약되어 있다. 저자는 몇 가지 구체적인 실례를 통해 불필요한 기억의 피해를 지적한다. 장난삼아 술 취한 사진을 SNS 웹사이트에 올렸다가 교사 임용을 거절당한 사례나 30년 전에 썼던 논문의 한 구절 때문에 입국이 거절당한 사례 등을 통해, 수많은 웹 사이트와 정보 공유 사이트에 가입해있고 매일 인터넷에 접속하는 현대인들에게 망각이 기억으로 대체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자신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기 쉽게 지적한다.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문제의 인식에서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한 선택 가능한 대안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금욕주의, 정보 프라이버시 권리의 보장, 기술적 인프라, 인지적 조정, 정보 생태계, 완벽한 맥락화 등 규범적, 법률적, 기술적 메커니즘을 적용한 여섯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비교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다시 망각의 미덕을 도입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정보 만료일’의 도입을 주장한다. 과연 저자가 제시한 정보 만료일의 설정이 실효적인 방법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논의의 과정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문제 인식 이후의 단계로서 해결책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훌륭하다. 책의 내용 중 문제 인식과 대안 사이를 이어주는 방법으로 망각과 기억의 개념과 역사를 논하는 부분도 진지하다.

최근의 여러 논의에서 성명, 전화번호, 주민번호, 이메일, 위치정보 등의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는 정보주체의 인격권이나 재산권의 보호 차원으로 이해되고 있고, 이에 대한 법적, 사회적 책임과 대응방안도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인터넷에 공유된 게시글, 사진, SNS 대화, twit, 언론기사 등에 대해서는 그 책임과 대응방안이 모호하며 프라이버시권과 알 권리 사이의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개인정보의 경우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된 디지털 기억이 정보주체의 사회적 인격을 결정하는 자료로 이용될 수 있으므로 앞서 말한 망각과 기억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특히, 아직 인격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아동, 청소년기의 개인에게 미래의 사회적 인격상 결정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개인정보에 대한 중요성과 위험성의 인식은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 책 [잊혀질 권리]는 정보화 시대를 앞서가는 디지털 리더들에게도 가치가 있는 읽을거리지만, 연필로 쓰는 것보다 마우스로 클릭하는 것을 먼저 배운 디지털 세대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이고 그 부모들이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1)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 구본권 옮김, 잊혀질 권리. 지식의 날개, 2011 [본문으로]

2) 고은별, 최광희, 이재일, “EU와 한국에 구현된 ‘잊혀질_권리’의 차이”, 인터넷윤리학회지 특집호, 한국정보과학회/한국인터넷윤리학회, pp.34-41, 2012. 10 [본문으로]

저자 : 황호영

한성대학교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