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중립성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망중립성’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망중립성을 둘러싼 갈등이 실제 어떻게 이용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기업의 도전을 막는지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떻게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도전이 좌절됐는지 생생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또 기술 발달과 진화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들이 어떻게 차별과 차단을 극복했는지 역사를 살펴보면 좀 더 쉽게 이해된다.

국내에서는 카카오톡의 mVoIP인 보이스톡이 3G 환경에서 요금제에 따라 차단되면서 망중립성 이슈가 대중적 관심을 얻었다. 비록 2011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합법적인 서비스를 불합리하게 차별하거나 차단해서는 안되지만, mVoIP 차단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미 2010년 ‘Open Internet Rules’를 발표해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 대한 차단 금지와 불합리한 차별금지를 천명한 미국에서도 상황은 계속 반복된다. 이번에는 애플의 야심작, 3G에서 아이폰을 통해 화상통화가 가능하게 만든 ‘페이스타임’이 망중립성 논쟁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IT매체 기가옴은 자유언론, 오픈기술연구소 등 시민단체와 이용자들이 망중립성 침해 혐의로 AT&T를 FCC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9월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8월 AT&T가 애플의 3G 기반 화상통화 기능을 차단한다고 발표한 이후 반발이 거세지면서 불거졌다. AT&T의 아이폰 사용자는 새롭게 출시된 모바일 공유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했을 경우에만 3G 페이스타임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풍경, 새삼스럽지 않다. 미국에서 망중립성을 둘러싼 소송 전쟁은 역사가 길다. 1950년대 Hush-A-Phone, 그리고 Carterfone은 “허락 없이 함부로 이런 장비를 전화기에 붙이면 안된다”는 이유로 AT&T의 차단을 겪은 선구자인 이들은 법정 투쟁과 FCC 제소 등을 통해 간신히 차단 문제를 해결했다.

법원은 당시 “공중망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모든 단말기의 접속 이용을 허용해야 한다(No Harm to Public Network)”는 원칙을 세웠다. 전화 외에도 전화 선을 이용하거나 혹은 덧붙이는 장비들에 대해 “망에 문제가 없다면 괜찮다”는 이 판결은 이후 팩스, 모뎀 등 단말기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데이터 통신의 진화를 가져온 계기가 됐다. 망을 보호하느라 어떠한 도전과 혁신도 허락하지 않았다면 팩스를 비롯해 인터넷까지 그 어떤 것도 도전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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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Hush-A-Phone 광고, 깔대기처럼 소리를 모아주는Telephone-Silencer 개념의 단순한 장비였다.>

2004년 통신 사업자인 Madison River-Communication 은 Vonage 사의 인터넷 전화(VoIP)를 차단했다가 이용자들의 고소에 따른 FCC의 위법 결정에 따라 벌금까지 내고 차단을 풀었다. 2008년 Comcast는 BitTorrent 파일 공유 서비스를 차단했다가 FCC가 시정명령을 내리자 법정으로 싸움을 끌고 갔다. 2009년엔 AT&T가 다시 아이폰의 Skype 서비스를 차단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발 속에 이를 철회했다. 2011년 Verizon은 미국의 망중립성 원칙인 Open Internet Rules가 위헌이라는 소송도 냈다. 그리고 다시 2012년 이번엔 페이스타임 차단이다.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일단 차단했다가 법원이나 FCC에 의해 철회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 불편한 진실. 통신망을 갖춘 사업자들은 ICT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통신과 인터넷 분야의 기술 발전은 상당 부분 안정적인 망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이 훌륭한 기업들이 왜 망을 통한 새로운 혁신과 도전에 대해 일단 반대하고 차단하는 일을 반복할까. 망 사업자가 망의 안정성을 위해 과부하가 걸리거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한하는 것은 망 사업자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반복된 사례에서 확인됐듯, FCC나 법원에 의해서 차단이 철회된 이후에도 망이 과부하 등을 이유로 장애를 일으킨 사례는 없었다. 2000년대 초 다이얼패드를 비롯해 인터넷 전화가 등장했을 때에도 통신사들은 “특정 서비스가 인터넷 망을 과도하게 점유해 다른 서비스 품질까지 떨어뜨린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VoIP 트래픽은 mVoIP과 마찬가지로 미미했다. 이후 통신사들은 직접 VoIP 시장에 뛰어들어 시장을 장악했다. 즉 VoIP 시장이 커져도 트래픽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차단 시도가 이어지는 것은 시장의 논리로 해석할 수 있을까. 기존 시장의 수익을 해칠 가능성을 우려, 매번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경쟁자를 견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차라리 그렇다면 기업으로서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자신의 시장에 끼어들려는 다른 경쟁자를 다양한 수단으로 압박하는 것은 비즈니스 전략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문제는 망을 가진 사업자가 망이 없는 사업자에 대해 그런 방식으로 견제하는 것은 공정한 전략인지 여부다. 그 전략이 정당하지 않았고 ICT 생태계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늘 규제 당국과 법원의 개입을 가져왔다는 것은 역사적 경험이다.

일각에서는 엄청난 투자비를 들여 망을 깐 사업자만 불리하고, 망을 이용하는 사업자만 이득을 가져가는 구조가 공정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망을 이용하는 사업자가 있어야 망의 가치가 높아지고 망 사용료가 늘어나는 것이 시장의 구조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무선망 데이터 이용대가도 점점 더 많이 내고 있다. 그리고 망을 이용하는 기업도 서비스가 잘 될수록 더 많은 망 이용대가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지상파 3사가 연합한 콘텐츠 플랫폼 POOQ은 무료 서비스를 중단하고 유료 서비스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POOQ은 서비스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전용회선 비용 등 망 이용대가를 월 5억원 이상 통신사에 지불하면서 무료 서비스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국내 주요 포털 사업자는 한 해 수백 억원의 망 이용대가를 통신사에 내고 있다. 돈 내고 쓰는 서비스인데, 어떤 서비스는 통신사와 경쟁한다는 이유로, 통신사 수익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차별적으로 제한되거나 차단되어야 하는 것이 공정한가. 이것은 이용자나 망 이용 사업자나 모두 따져볼 수 있는 문제다.

만약 여력이 되는 대형 인터넷 기업들이 통신사에게 훨씬 더 만은 대가를 내고서라도 차단 없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나서면 어쩔 것인가. 여력이 부족한 신생 후발 사업자들은 큰 기업들이 내는 수준으로 망 이용대가를 지금보다 훨씬 더 내면서 뭔가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을까? 출시 50일 만에 1500만 명이 앱을 다운로드한 애니팡 같은 소셜 게임에 대해 이용자가 많다는 이유로, 트래픽이 많이 발생될 수 있다는 이유로 망 이용대가를 더 내야한다고 한다면 애니팡 같은 도전이 이어질 수 있을까. 애니팡은 물론, 모바일 신화를 새로 쓰고 있는 카카오톡 조차 아직까지 수익을 적극 회수하는 단계는 아니다. 서비스 차단과 차별 걱정 없이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ICT 생태계의 기본 아닐까.

기술의 발전은 예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것을 현실화한다. 이제는 기존 전화 서킷망을 사용하지 않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패킷망을 통해 영상통화도 가능한 시대다. 3G영상통화는 애플 페이스타임 뿐 아니라 다음 마이피플도 선보인 서비스다. 이 같은 기술혁신이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서비스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시장에서 검증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정 서비스에 대한 망 사업자의 차단과 차별은 혁신의 속도를 지연시킬 뿐이다. 또 애플이나 다음까지 제공 가능한 페이스타임 같은 서비스를 왜 통신강자인 망 사업자는 제공하지 않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더 저렴하고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가 왜 차별 받고 차단되어야 하는지 이용자는 이해하고 있을까. 통신사는 현재 mVoIP 서비스 보다 통화품질도 좋고, 다자간 통화 등 부가서비스까지 가능한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자들인데, 왜 하지 않을까.

ICT 생태계의 혁신은 경쟁을 통해 이뤄진다. 이 때문에 통신정책 당국은 시장의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감독한다. FCC가 매번 시장에 개입한 이유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이 같은 이유에서 2011년 말 망 사업자가 함부로 차단과 차별을 못하도록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합법적 서비스이며 망 과부하 등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mVoIP 서비스는 차단과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망이 있는 사업자와 없는 사업자간 힘겨루기 문제가 아니며 혁신과 공정경쟁의 문제다.

저자 : 정혜승

디지털 정책가/(전)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전)카카오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