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개인방송의 빛과 그림자 –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어떠한 빛을 비출 것인가

1. 빛과 어둠의 변증법

빛은 보통 좋은 의미를 발산하는 단어에 속한다. 밝음, 활기참, 생동, 희망과 같은 연상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여기에 또 하나 덧붙이자면 빛은 ‘계몽’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간을 미몽에서 깨어나게 하고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신이나 이성을 ‘빛’으로 표현한다. 빛은 어둡고, 우울하고, 거짓과 기만, 권력과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을 비추어 그 세상이 그리 좋은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언론이나 미디어를 ‘빛’과 같은 존재 혹은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빛이 자신만이 빛이라고 우기면서 다른 것들을 모두 없애야 할 어둠이라고 억누르는 순간부터 빛은 권력과 폭력이 되어 스스로 어두움이 된다. 우리는 계몽주의 사상이 절대군주의 손에 들어가 절대군주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서 오직 자신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순간 그 군주가 얼마나 거대한 폭력을 앞세운 권력 행사를 일삼게 되었는지는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다. 또 빛이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항상 빛이라고 착각하는 자만과 독선에 빠질 때 빛은 진리의 인도자가 아닌 비(非)진리 혹은 반(反)진리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빛이 밝은 진리의 계몽 사도가 되고자 할 때 스스로 어둠이 되어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타인이 아닌 자신을 객관적인 비판과 숙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로 이 성찰의 과정이다. 빛이 어둠이 되고 다시 어둠이 빛이 되는 변증법은 사회를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작동시키는 필수적인 매개체(곧 미디움)이다.

우리의 미디어 환경과 커뮤니케이션도 이러한 빛과 어둠의 변증법의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새로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출현하고 대중화될 때마다 우리는 ‘밝음’과 ‘생동감’을 먼저 본다.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 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빛들이 우리 사회를 보다 괜찮은 곳으로 만들어 왔는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뉴스와 정보, 교양과 교육, 오락에 이르기까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변화에 필요한 요소들을 매스미디어를 통해 확보할 수 있었다. 또 시민들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국가나 정당, 공적인 제도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목소리를 조직화할 수 있었다. 매스미디어는 하나의 ‘빛’이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는 자신들만의 미디어 권력을 형성하며 여론을 조작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고 거대한 악에 대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다. 시장에서의 경쟁 환경이 심화됨에 따라 ‘미디어’로서의 자기 존재성을 뒤로 한 채 무분별한 정보 상품, 콘텐츠 상품을 찍어내고 소비자에게 판매하기에 바빴다. 저널리즘과 미디어 생산물의 질은 하락하거나 정치경제적 압력에 백기를 들었다. 이제 빛은 비춰야 할 곳을 비추지 않게 되고, 비추지 않아도 될 혹은 비추면 안 되는 곳을 막무가내로 비춰댔다. 미디어의 윤리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은 쇠락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과 자기 생존을 위한 정치적 거래가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같은 네트워크 기반 미디어가 생활의 중심에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빛’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스미디어의 거대한 권력과 해악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정보 환경과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대한 믿음이 컸다. 소수 미디어 독과점 기업이나 언론 집단이 저널리즘과 교양, 오락 영역을 지배하고 있을 때, 인터넷에 모여든 새로운 정치, 문화적 전사들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독과점을 깨고 그동안 말해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았던 것들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인터넷 공간은 아무리 통제하려고 해도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서 그런 다양하고 대안적인 주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학자들은 인터넷에서 진정한 ‘공론장(public sphere)’의 모델을 발견했다고 기뻐했다. 지역, 국경, 민족, 인종, 종교의 경계를 넘어 인간이 자유롭게 모든 것에 대해 말하고 토론하며, 이것들이 인류에게 새로운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 기대와 믿음은 여전히 강력하고 또 타당하다.
그런데 이 빛이 만들어내는 기대와 믿음을 자꾸 의심하게 만드는 어둠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수 많은 비도덕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와 범죄적 행위들은 인터넷 문명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국가나 시민들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이미 부상했다. 누구나 사용가능한 시청각 미디어 기술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디어의 직접적인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하고 있지만, 이 미디어를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떠한 도덕적 성찰과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리 크지 않다. 빛이 어둠이 되는 순간이다.

2. 인터넷 개인 방송, 그 충격스러운 모습

‘BJ(broadcasting jockey)’라는 용어의 탄생. ‘자키’는 원래 경마용 말을 타는 사람이다. 이 용어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에서부터 대중음악 음반을 들려주는 사람을 거쳐 비디오물을 제작하고 보여주는 사람(VJ)을 지나 BJ에 이르렀다. BJ들은 인터넷 개인 방송 시대를 상징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BJ는 경주마를 조종하는 사람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네트워크 미디어 상에서 온갖 방송물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 사업자들은 인기좋은 BJ들을 모아 실시간 방송 서비스를 지원하고 이를 통해 상업적 이득을 추구하는 사업 모델을 발전시키고 있다. 아프리카티비, 팝콘티비, 라이브스타, 아마존티비, 버블티비 등의 공간에서 현재 수 천개의 실시간 방송 채널이 활동하고 있어 정확한 집계가 어려울 정도이다. 라디오의 시대에 방송국이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사회자와 음악 전문 DJ과 계약해 최고의 진행자나 DJ를 내세워 라디오계의 왕좌를 다투었다면, 인터넷 사이트 사업자들은 최고의 BJ와 그들의 실시간 방송을 내세워 인터넷 방송계의 왕좌를 놓고 싸우는 것이다. 양상도 비슷하다. 네티즌 사이에 최고 스타의 자리에 오른 BJ도 늘어나고 있고, 반면에 외면받거나 저주받는 BJ도 늘어나고 있다. 또 최고의 인가를 구가하고 있는 채널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채널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실시간 개인방송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빛’과 ‘소금’까지는 아니지만 유쾌하고 서로에게 유익한 ‘깨소금’의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충격적이다 못해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혐오감과 선정성, 퇴폐성과 저질성은 반인륜적 방송의 표본들이다. 더 나아가 BJ들의 컴퓨터를 해킹한 후 화상카메라를 원격조정해 나체 장면이나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방법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신종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지상파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인터넷 개인 방송의 실태를 포함해 특정 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는 실시간 BJ 방송들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당혹스러울 뿐이다. 성인만이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시청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총체적인 문화적 비관주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렇게 재미없고 의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까지 혐오스러워져야 하는가? 우리가 이렇게 해서라도 재미와 쾌락을 찾아야 하는가?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만 즐거움이나 긴장 해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사실 이런 질문은 인터넷 개인 방송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은 드는 생각일 것이다(물론 매우 유익하고 큰 ‘빛’은 아니더라도 작은 ‘빛들’을 비추는 방송과 BJ들도 많다).
연령등급을 표시하고 접근을 제한하는 장치들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누구나 시청하고 참여가능한 이 방송들 앞에 앉아 있는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다수의 성인들 모두 사실은 희생자이다. 놀이와 휴식, 긴장해소, 다양한 쾌락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공간, 방법이 부족하고 거의 모든 시공간과 일상을 미디어로 채워 내게 만드는 우리 사회가 생산한 또 다른 괴물이다. 이 괴물 앞에서 우리는 인터넷 사이트 사업자만을 탓할 수도, BJ와 BJ를 활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만 탓할 수도 없다. 또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만 탓할 수도 없다. 그들이 특별히 기괴한 취향과 욕구를 가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3. 더 이상 간과하거도 침묵하지도 말고 대안을 찾자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정적인 능력을 믿는다. 한때 기괴한 미디어 문화가 광풍처럼 몰아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그것이 왜 옳지 않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협하는지 알게 되고 또 힘을 합쳐 그것에 저항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반인륜적인 방송 채널들을 모두 인지할 수도 없고, 그것들에 제동을 걸 수단도 없다. 각자 가정에서 의심어린 눈초리로 자녀나 가족 성원들을 서로 감시하며 ‘부디 내 집에서만은 이런 일이 없도록’ 바라거나 미디어 교육에 기대를 거는 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일 것이다. 아니면 정부나 제도적인 기구가 나서서 인터넷 방송에 대한 검열 혹은 심의를 강화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전자는 개별적이고 무력하다. 후자는 검열이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더 이상 인터넷 상의 괴물과 같은 콘텐츠나 사업자들을 간과하지 않고 그것들에 대해 떠드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슨 조치를 취하겠지 하는 외부 관람자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누군가의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해서라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미디어 문화가 결국 공동체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문화적 자각을 공유하고 이것들을 막아서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합이 필요하다. 좋은 미디어 문화를 만들기 위한 시민단체들을 지원하고 그들과 함께 ‘시민들로부터 만들어지는’ 법이나 제도를 국회와 정부에 요구하는 실천들을 벌여야 한다.

둘째, 학부모 단체나 미디어 시민단체들이 정부나 정당,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매년 인터넷 문화의 주요 흐름과 실태들을 조사하고 독립적인 보고서를 제출하고 필요한 문제해결방안들을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시민 거버넌스를 발전시켜야 한다. 어떤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순간 소리를 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문화를 둘러싼 시민 거버넌스의 체계를 다듬고 힘을 키워야 한다. 편견이나 왜곡없이 인터넷 개인 방송의 실태를 정교하게 구조화된 방법에 기초해 조사 분석을 실행하고 이에 대한 보고서의 제출과 시민사회, 정부, 정당, 학교가 함께 참여하는 토론회를 통해 합의할 수 있는 정책적 방안들을 도출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의 실행에서 오는 오류와 한계가 발생하겠지만 모든 일은 이러한 시행착오에서 발전하는 법이니 그리 주저할 필요는 없다.

셋째, 지금 당장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인터넷 개인 방송이 사적인 통신의 영역인지 공적인 방송의 영역인지를 명확히 설정하고 여기에 따른 관련 법이나 규범들을 적용해야 한다. 나는 인터넷 개인 방송을 방송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적인 관계들을 맺고 있는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적인 내용들을 중심으로 한 비밀스러운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익명의 다수 대중에게 전파된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방송’이다. 전송망이나 플랫폼이 아닌 방송이라는 원형적 행위에 있어서 기존의 방송과 동일한 만큼 방송법과 방송 윤리를 통해 인터넷 개인 방송에 대한 판단과 규제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넷째, 인터넷 개인 방송을 포함한 인터넷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사업자들의 실질적인 자율 조치들을 발전시켜야 한다. 인터넷 사이트 사업자들은 콘텐츠 필터링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실시간 방송들에 대한 자체 심의팀을 운영하도록 해야 하며, 이 심의의 결과들을 시민사회와 국회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언론 보도의 공정성과 같은 문제의 심의보다 방송통신 전반에 걸친 문화적 논의 기구로 변화하고 이에 맞는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치적 심의 시비를 일으키지 않도록 보도나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를 최소화하는 대신 미디어 콘텐츠 전반에 걸친 폭넓은 조사와 분석 그리고 다양한 규제 정책들을 입안하는 기구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단위의 독립적인 심의위원회를 설립하고 여기에 시민단체, 학부모단체, 지역 의회 및 연구자들이 참여해 미디어 콘텐츠를 심의하는 제도적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있는 소수의 직원들과 특별위원회나 소위원회와 같은 제한된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쏟아지는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문화적 논의와 심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심의기구나 제도의 전향적인 변화 방안들을 지금 당장 논의하고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인터넷 개인 방송이 빛과 소금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유익하고 유쾌한 문화적 통로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 : 이영주

제3언론연구소장,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